▷ 발달장애인 자녀 시설에 맡긴 지 30년, 부모 변현숙 씨 인터뷰
▷ "탈시설 법안에 정신이 까마득하다... 시설에서 지낼 수만 있게 해달라"
[위즈경제] 김영진 기자 = “이전에는 아이가 꼴찌를 하더라도, 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다 받았죠.”
과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변현숙 씨는 30년 전의 기억을 되짚었다. 중증발달장애인인 자녀를 장애인거주시설에 맡긴 지 어느덧 30년. 처음 변 씨는 자신이 이화여대 교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자녀를 교육하고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언어청각센터에서 그룹교육도 해보고, 교수님께 교육을 부탁드리기도 했다. 집에선 변 씨 부부가 퇴근하기 전까지 시어머니가 손자를 돌봤다. 어느 날, 힘이 부쳤던 고령의 시어머니는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막막한 심정이 가득했던 변 씨는 생계를 위해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자녀가 10살에 이르던 시기, 처음엔 안동의 기숙학교를 찾았다. 몇 시간을 운전해 찾아간 곳이었다. 안동 기숙학교에선 5천만 원을 요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설의 성격이 짙은 시설은 아이를 돌봐 주는 데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변 씨는 설명했다. 5천만 원이라는 큰 돈은 변 씨 부부에게 없었다. 변 씨는 다시 전국을 수소문했고, 철원에 자리한 한 시설에 자녀를 맡길 수 있었다. 철원의 시설은 규모가 큰 곳으로, 버스를 대절할 정도로 전국에서 온갖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시설은 양호하지 못했다. 자녀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은 어른 키높이에 위치해 있었다. 변 씨는“시설의 사각지대에선 아이의 코와 귀가 깨물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아이의 얼굴이 많이 상했죠”라고 전했다.
안타까워하던 변 씨에게 연이 닿았다. 지인의 도움으로 당시 건설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석암재단 산하 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이곳에 대한 변 씨의 첫 인상은 좋았다. 마당도 있고, 허리 높이의 창문은 자녀에게 풍경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선생님들도 변 씨의 자녀를 잘 돌봐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3년 무렵, 변 씨는 석암재단의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변 씨는“부모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입소비를 지불하고, 다달이 시설을 방문해 자녀를 봤던 게 전부였어요. 시설의 뒷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모에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고 이야기했다.
비리가 발각되면서 시설의 모든 게 바뀌었다. 석암재단 산하의 시설은 원래 총 세 곳이었다. 장애인 중 어린 층이 거주하는 '해맑은 마음터', 청장년층이 머무르는 '누림홈', 건강이 좋지 않은 중증의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향유의집'이다. 이사장의 비리가 밝혀진 이후, 석암재단에서는 변 씨의 자녀를 해맑은 마음터에서 누림홈으로 옮기겠다고 나섰다. 변 씨는 체구가 작은 자녀가 다른 아이들에 의해 다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럼에도 석암재단 측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도 전부 그만두었다.
문제는 확대되기 시작했다. 프리웰 재단의 비리를 적발한 당시 서울시는 시민단체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 감시자 역할을 맡겼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박경석 상임대표가 있던 곳이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시설에 개입하고 프리웰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6년 뒤, 2019년 8월경 프리웰재단은 부모를 불러모아 산하 시설을 순차적으로 폐쇄하겠다고 알렸다. 재단의 일방적인 통보에 변 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부모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간담회에서도 '아이를 잘 돌봐줘서 고맙다' 그러고만 있었죠. 자녀를 전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부모들은 당황했습니다. 우리는 '시설 밖에서 아이가 적응하지 못하면, 시설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느냐', '지금 어디로 자녀를 옮겨야 하느냐'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이야기했지만, 김정하 프리웰 재단 이사는 3년 이내에 순차적으로 산하 시설을 없앨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뿐이었죠”, 변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강압적인 탈시설 기조에 변 씨는 분노했다. 시설 이용자의 부모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뭉쳤다. 대책회의는 물론, 서울시에 고발도 하고 보건복지부 인권위원회·한국장애인협회 등 관련 단체에 여러 번 진정서를 넣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미온적이었으나, 변 씨는 시설이용자의 부모로서 지금도 탈시설을 막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변 씨는 탈시설을 주장하는 단체들이 시설입소대기자와 그 가족들의 어려움을 하나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변 씨가 알고 있는 한 부모는 아들과 함께 죽음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시설은 자꾸 줄어들고, 아이의 체구는 커지면서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정신병원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사설 구급차와 택시를 바꿔타며 전국을 누볐다. 간신히 지방에 있는 정신병원을 찾고 나서야, 그 부모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집안의 모든 물건을 엎고, 던지는 발달장애인 자녀도 있다. 부모는 가구를 지키기 위해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끈 혹은 자물쇠로 온 집안의 물건을 잠가 놓아야 했다. 집에서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로 인해 많은 민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부모는 변 씨에게“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이를 데리고 죽으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변 씨는 자신이 목격한 시설입소대기자의 힘겨운 삶들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가족이 같이 키워야 하는데, 힘들어서 부부싸움이 잦게 일어납니다. 그러다 이혼하면 어머니들이 자녀를 돌봐야 하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예요.” 변 씨는 어머니들이 홀로 생계를 꾸리면서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전했다.
변 씨는 시설입소대기자의 삶을 알지 못하는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8월 초에는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장애인복지법 개정법률안' 등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변 씨가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이하 '부모회')는 이를 탈시설 3법이라 명명하며, “거주시설 장애인이나 그 보호자가 탈시설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거세게 탈시설 정책에 반대해 왔음에도,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탈시설을 강행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행위인 동시에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명목 하에, 시설을 축소시키고 중증발달장애인까지 강제로 자립시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이다.
변 씨는 신체장애인만 장애인인줄 아는 국회의원이 많다고 비판했다. “중증발달장애인을 본 적이 없으니까,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강조하며 시설을 감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중증발달장애인과 하루라도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한 쪽의 말만 듣고 법안을 발의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변 씨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막막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변 씨는 탈시설 3법의 위험성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탈시설 조례안이 그냥 폭탄이었다면, 탈시설 3법은 핵이나 다름 없는 셈”이라며, “궁극적으로 거주시설을 모두 없앨 수도 있는 위험한 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탈시설 3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시설 운영자는 자기의 의사에 따라 무연고 중증발달장애인을 내보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보살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무연고 중증발달장애인의 자립 생활은 매순간이 생명의 위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부모회는 탈시설 3법이 일방적으로 통과되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0일에는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가 끝나고, 시설이용자 부모들 사이에선 '우리가 죽어야 탈시설 문제가 끝이 날 것 같다'는 어두운 체념이 오갔다고 한다.
변 씨는 시설이용자의 부모들은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새로운 시설을 짓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그저 시설에 비가 새지 않게, 자녀들이 잘 지낼 수 있게, 리모델링을 위한 예산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자립 생활을 원하는 사람은 외부로 나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설에서 계속 살게 해주었으면 합니다”고 전했다.
발달장애인의 노화가 시작되는 평균 연령은 43.8세, 변 씨는 현재 41살인 자녀의 모습이 이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예전엔 어디든 잘 따라다녔는데, 요즘은 어디를 데리고 나가면 몸을 뒤쪽으로 젖히곤 덜덜 떨면서 걸어요”, 막막한 기색의 변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시설을 만들어달라는 게 아니예요. 그저 지금의 시설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여생을 마쳤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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